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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시선] 뉴질랜드 한인의 보편적 정체성

뉴질랜드와 호주 6개 도시를 돌며 다큐멘터리 상영회와 디아스포라 강연을 했다. 일반적으로 뉴질랜드와 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90년대 이후 이민을 하였기에 대부분 2세대를 넘지 않는다. 1903년 하와이 이민 선조들을 차치하더라도 1965년 이후 대거 이민이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사보다 한 세대 정도 늦은 셈이다.   1992년의 LA폭동 등 수많은 사건을 통해 ‘재미 한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한 미국  한인들에 비해 뉴질랜드·호주의 한인들에게 정체성 문제는 아직 설익은 사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필자는 도시마다 한인 이민자들과 또래 2세들을 만나 그들의 정체성 형성 과정과 각 한인 사회가 직면한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 중 특히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서의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제작한 영화 ‘초선’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분이 손을 들었다. 청소년이 된 딸 아이가 본인이 뉴질랜드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혼란스러워하는데 어떤 대답을 해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진부하고 원론적인 대답은 피하고 싶었다. 마침 현장에 있던 뉴질랜드 한인 2세 레베카 정 교수에게 정중히 대답을 양보했다. 의사이자 대학교수로 뉴질랜드와 한인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녀는 필자 생각에 가장 이상적인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안 키위 (뉴질랜드 한인)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정 교수의 대답이었다. 마오리족은 영국인보다 500여 년이나 먼저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하지만 영국인이 몰려오며 양측은 토지 분쟁과 주권 문제로 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마오리족이 희생됐다. 이로 인해 한때 마오리족의 문화와 존재 자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부터 마오리족의 문화와 전통 복원 운동이 일어났고 이제 그들의 문화는 뉴질랜드라는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우리와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마오리족의 정체성을 배워야 한다는 정 교수의 대답에는 여러 혜안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정체성의 관계성이다. 정체성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정체성은 상대적이고 관계적이다. 타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로 자아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다.     둘째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구체적 맥락의 중요성이다. 똑같은 한인이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의 정체성과 뉴질랜드에 사는 한인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자아에 대한 인식은 각 국가의 정치적 상황, 이민자에 대한 수용성, 소수계의 역사, 경제적 차이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거주하는 사회의 구체적 맥락, 역사 등을 통해 자아와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개념화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정체성의 보편성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자아에 대한 사유인 동시에 권리의 문제, 평등의 문제, 사회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마오리족이 직면한 가난과 불평등은 현재 진행형이고 중층적이며 복잡하다. 그것은 흡사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도 유사하다. 한인보다 먼저 차별과 희생을 경험했고, 투쟁과 권익 운동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을 규명한 그들의 발자취와 토대 위에 한인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에 결국 정체성의 문제는 우리 공동체를 초월하는 보편적 사회적 가치와도 이어진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배제된 채 한인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정 교수는 지적한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는 미국행 비행기에서, 앞으로 뉴질랜드 한인 2세, 3세들에게 정 교수의 삶과 철학이 선사할 긍정적 효과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뉴질랜드 정체성 뉴질랜드 한인 정체성 문제 한인 이민자들

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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